엘비스 프레슬리 등장과 로큰롤에 열광한 이유
척 베리 말고도 또 로큰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수가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 죠. 엘비스 프레슬리는 비틀스가 등장하기 직전, 50년도에 등장한 대표적인 미국의 가수인데요. 존 레넌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엘비스가 나타날 때까지 그 무엇도 내게 영향을 준 것이 없다. ' 그런 의미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는 지금까지도 로큰롤의 황제라고 불리고 있죠. 척 베리가 로큰롤의 아버지라면 이 엘비스 프레슬리는 로큰롤의 황제, 로큰롤의 붐을 가장 정점으로 끌어올린 가수라고 할 수 있겠죠. 미국 내에서만 1억 장의 음반을 판매했고요. 또 88장의 골드 레코드와 45장의 플래티넘 레코드를 기록해서 영, 미 차트를 통틀어 31곡의 No. 1곡을 보유하고 있는 기록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죠. 1954년 7월 5일은 엘비스의 로큰롤이 탄생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 레코드사 스튜디오에서 엘비스의 첫 싱글, That's Alright Mama를 녹음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트럭 운전사에서 로큰롤의 황제로 팝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변신을 이룬 날이죠. 가난한 트럭 운전사로 살면서 어머니의 생일선물을 고르기 위해 레코드 점에 들어간 엘비스가 바로 운명이 바뀐 날입니다. 선 레코드사의 사장 샘 필립스가 이날 엘비스의 정식 오디션을 봤다고 하는데요. 이날 엘비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특유의 섹시한 몸짓과 창법으로 That's Alright Mama를 열창해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이 음악이 컨트리인지 블루스인지 모를 독특한 음악을 부른 엘비스에게 또 흑인인지 백인인지 모를 기묘한 창법으로 노래하는 엘비스에게 매료된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오디션으로 곧바로 선 레코드사와 정식 계약을 했고요. 그렇게 부른 That's Alright Mama가 첫 싱글로 발매되었을 때 세상은 로큰롤의 전성시대가 되었습니다. 엘비스는 1950년대 미국의 당대 최고의 섹시가이로 알려져 있죠. 또 엘비스의 음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주류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음악이었습니다. 마치 길거리의 불량배가 포효하는 사운드를 보여줬고요. 게다가 어른들이 너무 싫어하는 하체를 흔들어대는 과격한 댄스로 청년들의 인기를 끌어당겼죠. 그런 엘비스의 포효는 우리만의 사운드를 갖겠다는 일종의 포부였습니다. 백인 중산층의 사운드라고 알려져 있는 그런 기존 사운드를 기성세대의 사회 가치와 동일시하고요. 그것을 송두리째 거부하는 의식과 가치를 노래한 것이죠. 그래서 안정되고 길들여진 사운드 패턴에 대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엘비스 프레슬리의 로큰롤은 예쁜 멜로디와 아름다운 가사로 이루어진 사운드가 아니라 뭔가 폭발적이고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댄스를 보여주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 패턴을 보여준 것이죠. 그리고 로큰롤 붐을 일으킨 주인공은 바로 빌 헤일리 죠. 오히려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로큰롤을 먼저 히트시킨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바로 1954년 4월 12일 데카 레코드 스튜디오에서 탄생한 곡이 바로 Rock Around The Clock입니다. 원래 Bill Haley & His Comets라고 해서 이 밴드가 로큰롤 최초로 히트곡을 남겼는데 그게 바로 Rock Around The Clock이죠. 하지만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생소한 노래가 익숙해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리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익숙해지기까지 그리고 자꾸만 흥미로운 음악 소리가 되기까지는 1955년에 개봉된 영화 블랙보드 정글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로큰롤 열광의 시작
블랙보드 정글도 사실 50년대의 어떤 영화사를 이야기할 때는 굉장히 중요하게 거론되는 영화 중의 하나인데요. 왜냐하면 이 블랙보드 정글에 나오는 청년들이 굉장히 충격적인 모습을 미국 사회에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 삽입된 노래가 바로 Rock Around The Clock이었고요. 그 영화에서 다루어진 학교 폭력 문제는 그전까지 미국 사회는 안전하고 안정한 사회라고 간주되었던 미국 사회의 어떤 사고방식을 깨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영화로 기성세대들은 엄청난 충격을 많이 받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요. 더욱이 그 영화에 삽입되었던 빌 헤일리의 음악은 새로운 음악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거기에 대중이 매료되면서 빌 헤일리를 일약 로큰롤의 선구자로 만들어버립니다. 빌 헤일리는 'Rock Around The Clock, 한 곡으로 늦깎이 아저씨들이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10대의 대변자가 되어 있었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래서 빌 헤일리 콘서트는 정말 10대 청소년들로 가득했고 전 세계 반항아들이 이런 가죽 재킷에 이름을 새기고 다녔는데요. 이 풍습은 말론 브란도의 폭주족 이미지를 모방한 것입니다. 이런 청년들에 대해서 대중매체에서는 로큰롤이 굉장히 폭력과 선정성을 띠었다고 그리고 공격적인 음악이라고 평가하면서 로큰롤 스타일이 반항적 이미지로 고착되는 데에 한몫을 하게 되죠. 제임스 딘이라든가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머리에 기름을 발라 넘긴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서 부모들은 경악하기도 했고요. 또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입고 담배를 입에 물고 이제 막 유행하기 시작한 로큰롤 춤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이 전 세계를 휩쓸게 됩니다. 또 오픈카를 타고 다니면서 연애를 한다거나 하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과 새로운 청년 문화의 바람을 새로운 상상력과 함께 더불어서 반항과 자유의 분위기가 바로 서구의 청년 문화의 주류가 된 것이죠. 이런 분위기를 가장 먼저 눈치챈 쪽은 바로 음반 시장입니다. 드디어 10대가 새로운 황금 시장임을 발견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10대의 구미에 맞춘 상품들, 즉 상표가 붙은 가죽 재킷이라든가 이런 영화에서 말론 브란도가 입고 나온 티셔츠, 마블 만화책, 할리우드 바람둥이들처럼 자동차를 타고 멀리 떠나는 그런 것들이 10대 문화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로큰롤은 50년대의 새로운 10대 현상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런 만큼 로큰롤이 바로 문화 혁명을 주도했다고도 할 수 있겠죠. 50년대는 짐 크로우 법, 즉 흑백 분리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죠. 이럴 때 이 흑백분리 정책을 일상적으로 경험한 10대들에게 백인적인 것, 흑인적인 것은 무언가 다른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었는데요. 이 10대들에게 백인적인 것이라는 건 무언가 치열한 경쟁, 개인주의 그리고 획일성, 이런 것들을 표상하는 것이었다면 이들에게 흑인적인 것은 무언가 백인의 서구 문명이 상실해 버린 자연성, 공동체 정신, 이런 것들을 상징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서구의 지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적, 합리적 사고와 대립되는 것으로써의 원시주의적 스펙터클이라는 흑백 문화를 경외하는 느낌, 분위기가 생긴 것이죠. 그래서 로큰롤이 어떤 흑인 성을 전유하려 했던 측면, 바로 그것은 흑인과 백인, 우월함과 열등함, 이런 것을 전복하는 반사회적, 반체제적인 미학을 구축하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백인 10대들은 흑인 음악을 듣고 연주하고 춤추면서 자신들의 사회적 고립이나 소외를 극복하고자 하면서 하얀 흑인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이 하얀 흑인, 화이트 니그로라는 말은 책 이름인데요. 노먼 메일러라는 작가의 책 이름인데요. 어른들이 볼 때 내 아이는 백인인데 백인의 문화, 백인의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흑인의 문화를 추구하고 흑인의 문화를 즐겨하는 것에 대해서 하얀 흑인이 되고 싶어 하는 그 모습에 대해서 굉장히 속이 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10대들의 대항문화
그렇게 이런 식의 10대 청년들이 억압적인 기성 사회로부터 이탈하고 자신들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행동 양식들을 50년대에 시어도어 로작이라는 사람이 대항문화, counterculture라고 명명한 바 있습니다. 이 counterculture는 우리가 지금도 청년 문화에 있어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어휘입니다. 노먼 메일러의 화이트 니그로, 하얀 흑인은 굳이 이야기하자면 이성과 관념보다는 본능과 감정을 중시한다고 할 수 있고요. 어떤 인간으로서 자신을 창조하고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되찾기 위해 직관, 감정, 상상력, 독립성 이런 것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또 사회에서 조직적으로 억압받는 인간이 순수한 자기 자신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사회로부터 오히려 소외될 수밖에 없죠. 자기가 자신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으며 또 그런 위협을 감수해야만 하죠. 그런 위험과 소외는 결국 개인의 자아 발견이라든가 어떤 성장을 가져온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개인의 자아 발견과 성장은 의식의 개혁을 가져오게 되고 그 개혁이 바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청년들은 믿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먼 메일러의 화이트 니그로, 하얀 흑인은 개인의 의식 개혁을 통한 사회 변화를 꿈꿨던 청년의 어떤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죠. 미국의 청교도 윤리라든가 자본주의 체제, 과학 기술의 발전, 관료주의, 획일주의, 황금만능주의 사상 등은 사실 미국 사회를 경제적 번영으로 이끈 원동력이기는 했지만요. 사실 인간을 하나의 도구로 간주하는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런 사회 기풍이 인간의 생존 권리라든가 소망을 유린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고요. 이것이 인간의 생존에 영향력을 행사할 때 개인은 위축되고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청소년들은 경험하게 됐죠. 따라서 개인의 순응을 요구하면서 이성을 절대시 하는 사회에서 인간은 어떤 자신의 본능, 감수성, 감각, 이런 것들은 무시, 도외시될 수밖에 없게 되겠죠. 그래서 이런 억압적인 사회에 저항하고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 창조한 인물이 바로 노먼 메일러의 화이트 니그로입니다. 그래서 이 화이트 니그로는 뒤틀리고 왜곡된 어떤 현대 사회의 모순, 그런 상황에서 이상적인 성격과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소설의 주인공을 만들게 됩니다. 노먼 메일러의 책에는 이런 문장이 나오는데요. 한번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8세나 28세로 보이는 마치 커다란 버섯 같은 머리를 한 청년 백인 가수가 선 라의 우주적 음악과 왕벌의 비행 사이에서 은하계를 넘나드는 것처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그의 머리는 마치 앵앵거리는 파리처럼 떨렸고 그의 목소리는 마치 발정 난 전자음 같았으며 소용돌이와 같은 사운드와 소음의 파워는 절정에 이르면서 폭발하는 하나의 로켓 같았다. ” “그것은 허무주의 속에서 으르렁거리는 야수의 포효였다. ” “리포터들은 이 추잡하고 괴물 같은 10대 청소년들이 모든 전통적인 음악적 질서가 파괴된 사운드 속에서 그리고 모든 것이 해체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세대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 이렇게 커다란 버섯 같은 머리를 한 이 청년들이 바로 비트족, 힙스터 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10대 청소년들은 백인 음악, 사회를 기계적인 삶에서 발생한 고통을 무디게 만드는 아스피린처럼 영혼 없는 노래라고 치부했어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척 베리라든가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로큰롤의 비주류, 비대중적인 것이 어떻게 매혹적인 것으로 다가왔는지 느낌이 오시죠? 엘비스는 우울하고 소외된 10대들의 매혹적인 가수로 등극했는데요. 이때 그런 자기 파괴적인 미학의 상징으로 꼽히는 제임스 딘과 함께 반항하는 10대의 아바타가 된 것이 바로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주인공 홀든 콜필드입니다. 여기서 엘비스의 하체 춤은 성적 매력을 무기로 삼은 흑인적 표현성, 안방의 공격자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는데요. 사실 그 아주 유명한 미국의 에드 설리번 쇼에서 엘비스의 하체 춤은 백인 기성세대들에게는 모욕적인 행위로 취급되어서 상체만 방송되었던 유명한 사실들을 여러분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로큰롤은 기성세대들에게는 미국적 생활 방식, 안정된 질서를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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