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로큰롤에 열광했던 이유

청년들이 로큰롤에 열광했던 이유
청년들이 로큰롤에 열광했던 이유

로큰롤을 청년들이 왜 그렇게 로큰롤에 열광했을까요? 전후에는 일단 냉전의 위세가 극에 달했던 미국의 보수적인 백인 어른 세계가 일단 전제되어 있었고요. 백인 어른 세계들이 다 기성 질서, 기성세대들이 듣는 음악이라는 것은 이 청년들에게 굉장히 낡은 사운드로 비쳤습니다. 게다가 어른들이 항상 요구하는 어떤 덕목이란, 미덕이라는 것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엄마, 아빠 말을 잘 듣고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를 잘 지켜서 모범적인 미국 시민이 되는 것, 그런 것들이었잖아요. 그런 것들이 청년들이 받아들일 때는 굉장히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라고 생각을 했고 그런 어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낸 질서에 우리가 적응해야 되는 그러니까 우리가 맞춰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런 것들이 바로 청년들이 미국 사회가 주는 억압적인 분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 빌 헤일리가 등장을 해서 엉덩이를 막 흔드는 춤을 추게 된 거죠. 기타 사운드가 크고 강렬하고 그러면서 빌 헤일리가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것이 당시의 기성세대들이 볼 때는 매우 음탕한 것처럼 비춰졌습니다.비쳤습니다. 왜냐하면, 어른이 TV에 나와서 엉덩이를 흔든다라는 것은 어른들이 볼 때 예쁘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 청년들이 볼 때는 빌 헤일리의 엉덩이춤, 엘비스 프레슬리의 엉덩이춤이 너무나 새롭고 신선하고 자유로운 것으로 비쳤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미국 사회의 어떤 보수적인 분위기가 이런 로큰롤의 흥겨운 리듬과 어떤 육체적 쾌락을 암시해 주는 엉덩이춤, 이런 것들이 학생, 청년들에게는 되게 매료가 되었던 것들이죠. 특히 백인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은 출세, 교육, 도덕, 이런 것들을 권장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무언가 반체제, 반사회적인 그런 개인주의 성향들을 보이는 일군의 그룹들이 생겨났는데요. 이 그룹을 비트족이라고 합니다.

비트족의 등장배경

생각보다 부모님 말씀을 잘 안 듣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그리고 무언가 사회적인 질서에 혼용되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서 무언가 고독을 즐기고 나 혼자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이런 청년들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비트 족을 어른들이 봤을 때는 조금 이상하게 비쳤죠. 이해할 수 없는 청년들, 그리고 이런 풍요로운 소비 자본주의 시대에 그것을 즐기지 않는 이상한 아이들이라고 생각이 됐죠. 그래서 이 비트 족은 전례 없는 전후 미국 사회의 소비 열풍 속에서도 오히려 혼자서 모터사이클 여행을 한다거나 아니면 성 해방을 외친다거나 그러면서 음탕한 춤을 추면서 기성의 금지된 질서에 도전했던 그룹들입니다. 이들이 생각할 때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이라는 것은 고작 출세와 성공을 위한 규칙적이고 수동적인 삶의 자세를 강요받는 것일 뿐 거기에 베트남 전쟁과 같은 명분 없는 이데올로기 전쟁을 한다든가 아니면 성공을 꿈꾸기 위해서 청년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에 대한 실망과 허무감이 짙게 배어 있는 어떤 분위기였죠. 그래서 전후 세계의 패권을 거머쥔 미국 사회가 강요하는 그런 순응의 미덕에 의지해 봤자 기대할 만한 신념 같은 것은 어디에도 있지 않고 또 그런 것들을 지키면 지킬수록 청년들에게는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아이젠하워가 집권했던 50년대의 미국 사회는요.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서 원자 폭탄보다 더 강력한 수소 폭탄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고요. 또 메카시즘에 의한 사상 통제를 강요하면서 이데올로기 분위기가 굉장히 엄격하게 있었고 그러면서 소득 재분배를 통해서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격차를 줄여가면서 풍요로운 소비 사회가 창출되고 있었습니다. 1945년에서 1961년까지 미국의 GNP는 2,000억 달러에서 5,000억 달러로 증가할 정도로 굉장히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요. 그만큼 실업률은 매우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러면서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또 교외 주택, 화려한 주택들이 건설되면서 건설 붐을 이루었고요. 그런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가운데 새로운 구매력을 갖춘 대중들이 발생하기 마련이죠. 그래서 부모들은 주말마다 쇼핑몰로 차를 몰고 가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 준다거나 또 성인과 어린이들을 위한 유행 상품이 끊임없이 공급되었고요. 또 아버지는 아들에게 야구를 가르쳐주고 어머니는 걸스카우트 모임에 딸을 배웅한다거나 저녁에는 모두 거실에 모여서 미국의 전통적 가치와 건전한 삶을 강조하는 TV 프로그램을 가족이 함께 시청하는 풍조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풍습, 모습, 풍경들은 여러분, 미국 할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접했던 것들이죠? 그래서 록을 하는 뮤지션들이 혐오하는 풍경이 바로 이런 미국 중산층의 질서이기도 하고요. 또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도시화와 산업화는 그런 전통적인 미국 사회 공동체를 소멸시켜가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어떤 대도시에서 익명의 삶을 살면서 공장이나 사무실과 같은 틀에 박힌 공간에서 자신의 업무에만 충실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되었죠. 그런 와중에 짐 크로우 법이라는 흑인과 백인의 분리 정책에 의한 차별 정책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남북전쟁이 끝난 지 100년이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흑인이 누릴 수 있는 공간, 백인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정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흑인의 경제 수준은 미국의 경제 수준이 급속하게 상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흑인의 경제 수준은 나아질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런 10대 청년들은 개인적 자유가 소멸되어 가는 사회 풍조에서 자신들의 삶이 억압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기성세대들의 획일화된 사회 규범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왔겠죠. 그 출구가 바로 대중음악이었습니다.

대중음악과 청년들

청년들을 둘러싼 일상생활과 사회적 환경에 대한 반항, 저항 의식, 이런 것들이 가장 일상적인 부분에서 시작되었던 것, 그것을 바로 대중음악과 청년 문화의 특수한 관계라고 할 수 있겠죠. 백인 사회의 규범에 동화될 수 없었던 흑인들은 또 어땠을까요? 또 흑인들은 그들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의 음악들을 창출했겠죠. 여러분이 좋아하는 힙합 음악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원래 리듬 앤 블루스는요. 흑인 특유의 블루스에다 리듬을 붙인 것을 말하거든요? 이런 리듬 앤 블루스에다가 전통 재즈 스타일인 부기 우기를 열정적인 리듬 앤 블루스와 결합한 것, 그것이 바로 로큰롤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로큰롤은 흑백 음악의 통합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로큰롤이란 일렉트릭 기타로 강렬한 리듬을 내면서요. 블루스를 연주하는 음악을 말하는데요. 그러니까 바로 태생 자체가 흑인 음악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그것이 도시화하면서 조금 더 빨라진 음악, 그것이 바로 로큰롤입니다. 사실 로큰롤이 언제 탄생한 것인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로큰롤은 이미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해 왔었고요. 또 그것이 대중 연예 산업에 어떤 상업적 계산과 맞물리면서 광범위한 잠재적 고객에게 유통 가능한 상품이 되었던 것, 그것이 바로 1950년대라고 할 수가 있겠죠. 이렇게 로큰롤은 젊음과 낭만, 반항과 같은 대중들이 매혹될 만한 요소들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제임스 딘이나 말론 브란도와 같은 그런 반항적 이미지를 가진 남자 배우들이 그 분위기를 또 선도했었죠. 이렇게 어떤 권태, 굴종, 비겁함, 이런 부정적인 분위기들을 낳은 기성세대들에 대한 반항의 이미지를 구현했던 것이 바로 이 제임스 딘과 말론 브란도와 같은 영화배우들이었는데요. 그와 함께 거기에 더해서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그런 화려한 춤사위에 화려한 패션 이런 것들이 함께 가미되면서 대중의 요구, 특히 청년들의 요구에 가장 들어맞는 이미지가 구현되었던 것이죠. 여기까지 로큰롤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로큰롤 뮤직의 역사(로큰롤의 아버지 - 척 베리)

로큰롤 뮤직의 역사(로큰롤의 아버지 - 척베리)
로큰롤 뮤직의 역사(로큰롤의 아버지 - 척베리)

백인 음악으로 간주되었던 경쾌한 컨트리 뮤직에다가 흑인의 블루스를 결합한 것이 로큰롤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이런 로큰롤이 특이한 점은 그동안 돌려서 말하는 노래방식, 발라드 같은 예쁘고 아름다운 노래들은 무언가 메시지를 돌려서 말을 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죠. 하지만 로큰롤은요. 로큰롤을 즐기는 청년들은 자신들만의 유희라든가 어떤 성 문화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이런 로큰롤 뮤직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접하지 못했던 음악이었죠. 그래서 로큰롤 뮤직이 등장하자마자 흑인이건 백인이건 모든 청년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로큰롤 뮤직은요. 흑인과 백인, 또 세속과 신성의 경계라든가 사회 통념을 붕괴했다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춤에 대한 열정을 이끌어내면서 남녀 청년들이 부비부비 춤을 추게 됐죠. 또 기성세대들에게 이런 남녀 청년들의 부비부비 춤이 성적 쾌락을 암시해 주는 것으로 비쳤습니다. 그래서 로큰롤을 저속하고 부도덕한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 의미에서 이런 로큰롤은 지금까지 안전하고 완벽하다고 간주되었던 미국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을 단박에 흔들어버린 무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기성 질서의 고루함이라든가 안일함에 비해서 척 베리라든가 제리 리 루이스의 로큰롤의 경쾌한 리듬은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했죠. 이들에게 기성 백인 대중음악, 주류 음악은 소비 주의를 대변하는 억압된 사회를 상징했습니다. 반면에 비주류, 비대중적인 흑인 음악은 상대적으로 무언가 진정한 것으로 비쳤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음악은 소비 자본주의에 적합한 상업적 음악이었다고 생각했던 반면에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 음악이었던 흑인 음악은 로큰롤처럼 뭔가 진정한 것으로 비쳤던 것이죠.

로큰롤들의 주인공 - 척 베리

로큰롤들의 주인공은 바로 척 베리와 엘비스 프레슬리를 들 수 있겠죠. 거기에 앞에서 이야기했던 빌 헤일리의 Rock Around The Clock이 중요한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음악은 청년들에게 어떤 파편화되고 무감각한 인간을 양산하는 도시의 기계적 삶에 대한 일탈 그리고 기성 질서에 대한 순응을 강요하는 부모 세대에 대한 응답으로 돌려주었던 것이죠. 특히 척 베리는 로큰롤 뮤직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기타리스트이자 재즈 연주가인데요. 특히 로큰롤 기타 연주의 전형을 확립한 장본인으로 평가됩니다. 사실 엘비스가 등장하기 이전에 로큰롤을 히트시킨 선구적인 뮤지션이라는 의미에서 로큰롤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척 베리는 음악으로 흑백의 화합을 실천했다는 점에서 대중음악사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흑인음악과 백인 음악 분리를 깬 로큰롤

흑백 차별 정책, 흑백 분리 정책을 상징하는 짐 크로우 법이 위세를 발휘했던 50년대의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는데요.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흑인 음악을 부르고 연주하는 백인은 있었지만 백인 음악을 하는 흑인 뮤지션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척 베리가 이 보이지 않는 금기를 깬 최초의 로큰롤 싱어송라이터라고 볼 수 있겠죠. 이 척 베리의 대표적인 로큰롤 뮤직은 바로 Maybellene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Maybellene은 최초의 흑인 로큰롤 스타, 척 베리의 역사적인 첫 싱글입니다. 이 Maybellene이 등장한 이후에 모든 로큰롤 뮤지션들은 기타 연주에 관한 한 모두 척 베리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됩니다. 대표적으로는 비틀스가 이 척 베리의 곡을 즐겨서 카피했고요. 또 롤링스톤스가 그의 곡을 커버한 Come on으로 데뷔한 적이 있죠. 또 비치보이스와 밥 딜런도 그의 기타 연주를 자주 빌려다 썼고요. 그런 점에서 본격적인 로큰롤의 역사는 척 베리가 이 역사적인 싱글, Maybellene을 녹음했던 1955년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팝 계의 정설입니다. 척 베리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오리걸음이거든요. 다리 하나를 들고 기타를 연주하는 쇼맨십은 리틀 리처드라든가 제리 리 루이스,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다른 가수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 10대의 감성을 담은 세심하고 예리한 가사와 독창적인 음악 그리고 독보적인 제스처는 로큰롤다운 것을 확립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됩니다. 흑인처럼 노래를 부른 엘비스 프레슬리도 또 컨트리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흑과 백의 조화를 이룬 레이 찰스도 Rock and roll 뮤직을 커버한 비틀스도 이렇게 척 베리에게는 다들 채무자라고 할 수 있겠죠. 또 흑인의 블루스와 백인의 컨트리가 잉태한 로큰롤은 척 베리를 통해서 거대한 흑과 백의 진정한 협치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척 베리에 대한 평가들

존 레넌은 척 베리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만약 로큰롤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은 척 베리일 것이다. '라고까지 그 로큰롤과 척 베리의 관계를 아주 잘 설명해 줬고요. 또 밥 딜런도 이런 말을 했죠. '척 베리는 로큰롤 음악계의 셰익스피어다. ' 그만큼 로큰롤 음악계에서 척 베리는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비견될 정도로 큰 존재인 것이죠. 그런데 이 척 베리는 2017년에 세상을 떠났는데요. 그때 빌보드지는 이 척 베리의 로큰롤 장르를 칭송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척 베리는 로큰롤을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로큰롤을 세상을 변화시키는 태도로 그 형태를 바꿔 놓았다.” 이런 빌보드지가 이야기하는 척 베리의 업적은 그만큼 로큰롤 뮤직과 척 베리의 관계를 아주 잘 설명해 주고 있죠. 척 베리의 곡 가운데서도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곡이 바로 영화 Back To The Future에 소개되어서 유명해지기도 했습니다.

로큰롤의 탄생 배경

로큰롤의 탄생 배경
로큰롤의 탄생 배경

어떤 음악은 세대의 감성을 잘 반영해 주는데요. 그래서 음반 기획사에서 작사, 작곡하고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연주가가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청년들이 자생적으로 신나서 즐겁게 부른 노래가 다수의 사람들에게 감성적으로 호응을 얻었을 경우에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이 바로 세대 의식이 반영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로큰롤이 전형적인 그런 음악입니다. 먼저 로큰롤이 탄생한 배경을 좀 살펴보자면 1950년에 대표적인 대중가요, 대중음악이라고 할 수가 있죠. 또 그리고 로큰롤을 직접적으로 즐기고 했던 세대들이 비트 제너레이션인데요. 1950년대의 대중음악을 이야기할 때 핵심적으로 등장하는 장르가 로큰롤이고 그것을 즐겼던 세대들이 비트 제너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큰롤이 등장하는 시대상

로큰롤은 2차 대전 직후에 탄생한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음악인데요. 2차 대전은 승전국인 미국의 유례없는 경제 번영을 이루었죠. 미국의 기성세대들은 물질적 풍요와 안정 속에서 중산층의 규범과 가치를 내세우며 가족 중심적인 질서를 확립해 갔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학교에 다니고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고 세속적인 성공을 누릴 것을 요구했죠. 그런 것들을 아이들은 항상 억압적으로 받아들이기 마련이죠. 그렇게 경제적인 풍요와 안정된 가족 이데올로기가 이때 미국 중산층의 삶을 라이프 스타일을 가꾸어 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중산층의 삶이 하나의 어떤 허황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이들이 깨닫게 된 것은 얼마 안 됩니다. 바로 1960년에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죠. 물론 그 이전부터 1950년대는 흑인 인권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때였죠?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마틴 루터 킹이라든가 말콤 X, 이런 흑인 인권 운동을 주도했던 지도자들이 암살을 당하기도 하고요. 또 젊은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도 암살을 당하게 되죠. 이런 안정된 사회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고 믿었던 청년들에게 이런 사건들은 굉장한 배신감과 충격을 안겨주게 됩니다. 이렇게 당시 5, 60년대의 미국 사회는 베트남 전쟁과 흑인 인권 운동 그리고 그러한 사상과 지식인의 자유를 위한 투쟁 등 다양한 반권 위주 의의 흐름을 통해서 그런 청년문화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렇게 대중음악과 청년 문화의 관계가 굉장히 특수한 관계를 이루는 이유는 청년들의 저항 의식, 청년들의 반사회적 의식이 일상적 영역에서 잘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로큰롤 등장

먼저 로큰롤에서 로큰롤이라는 어휘는 1951년에 나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디스크자키였던 앨런 프리드가 다양한 인종의 청취자들에게 리듬 앤 블루스 음악을 틀기 시작할 때 이 곡이 어떤 곡인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로큰롤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은 라디오 방송이 굉장히 활발하게 이루어져 있죠. 채널도 굉장히 많고 그래서 채널이 흑인 음악, 백인 음악 그리고 어른들이 듣는 음악, 이렇게 전문화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이 앨런 프리드가 새로운 음악, 1950년대에 나온 새로운 음악들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로큰롤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 시작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로큰롤이 보편적이고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이 조금 더 중요하겠죠. 이 로큰롤이라는 음악이 처음으로 청년들 사이에 큰 히트를 한 것은 바로 55년에 개봉된 영화, 폭력 교실로 인해서였습니다. 한국에는 폭력 교실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요. 원제목은 블랙보드 정글이죠. 이 폭력 교실이라는 영화에서 Rock Around The Clock이라는 음악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 음악이 전형적인 로큰롤이거든요. 그래서 청년들은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이 탄생했다는 생각을 갖고 이 음악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게 되고 급기야 빌보드 차트 1위에 등극하면서 이때부터 로큰롤 붐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로큰롤이라고 할 때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엘비스 프레슬리가 로큰롤을 부르면서 화려한 나팔바지를 입고 하체 춤을 추었던 그 장면이 먼저 떠오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Rock Around The Clock이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빌 헤일리는 최초로 로큰롤을 히트시킨 역사적인 뮤지션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죠. 특히 이 영화, 1955년에 개봉된 영화 블랙보드 정글이 개봉했을 때 이 영화에 삽입된 음악과 그리고 그 영화에 등장하는 청년들의 패션이라든가 폭력적인, 공격적인 모습들에 대중들, 특히 청년들이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로큰롤 붐이 확산되게 됩니다. 이 Rock Around The Clock은요. 1955년 무려 8주 동안이나 미국 차트 1위를 차지하고요. 음반도 166만 장 빅히트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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