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 제너레이션 종류와 추구했던 목적
비트 제너레이션 종류와 추구했던 목적
비트 제너레이션은 사실 크게 2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힙스터와 비트닉을 구별하는 경우가 있고 구별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요. 굳이 힙스터와 비트닉을 조금 더 구별해 보자면 힙스터는 어떤 혁명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말해요. 그리고 비트닉은 방랑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 비트닉은 방금 앨런 긴즈버그의 길 위에 서라는 작품처럼 기성 사회를 떠나서 시를 쓴다거나 재즈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춘다거나 아니면 동양의 선불교에 빠진 사람들을 주로 칭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비트 제너레이션은 뉴욕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앨런 긴즈버그, 잭 캐루악, 루시엔 카, 이 세 사람이 만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타임스퀘어 암흑가에서 활동했다고도 해요. 그런데 5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주로 그리니치 빌리지, 비트닉 하면 생각나는 동네가 바로 그리니치 빌리지잖아요.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활동하다가 이후에는 샌프란시스코라든가 남쪽에 있는 뉴올리언스에서 모여 살았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의 중심부로부터 노스비치, 캘리포니아, 맨해튼 남동부를 거쳐서 샌프란시스코의 헤이트 애시 베리 지역으로 진출했다고 알려져 있죠. 그러면서 헤이트 애시 베리 지역은 지금도 보헤미 아니 즘의 새로운 요람으로 성장해서 나중에 70년대에는 바로 히피의 중심지가 되는 거죠. 그들은 자기들만 통하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고요. 자기들만의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그룹이 단단한 연대감과 결속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제임스 딘이라든가 말론 브란도와 같은 반항적인 배우들을 숭배했고요. 또 사회에서 성공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경멸했고요. 또 잭 캐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 에서 나타난 것처럼 어디로 가야 되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든 쉬지 않고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방랑자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의 획일성에 싫증을 느꼈기 때문에 어떤 사회가 부여하는 책임으로부터 도피해 보려고 했던 거죠. 그들은 기성 사회의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진정한 모습, 감성과 본능적인 감각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트 제너레이션의 추구 목적
이런 비트 제너레이션은 1950년대 미국의 경제적인 풍요 속에서 이런 획일화, 동질화의 양상으로 개개인이 거대한 사회 조직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것에 대항해서 민속 음악을 즐긴다든가 아니면 산업화 이전 시대의 전원생활, 원시적인 생활, 인간적인 생활을 추구했고요. 또한 인간 정신에 대해서 무한한 신뢰감을 가지면서 낙천주의적인 사고를 중시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비트 제너레이션을 황량한 천사들과 천상의 건달들이라는 별명을 붙인 사람도 있고요. 또 이 비트 제너레이션이 주로 들었던 음악이 재즈였기 때문에 반역과 재즈라는 말로 이 시대를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또 잭 캐루악의 길 위에서, 언더 로드라는 작품을 대표로 들어서 시와 길의 시대라고도 이야기합니다. 이런 작가 잭 캐루악과 그의 친구, 닐 캐세디, 또 배우 제임스 딘과 말론 브란도, 화가였던 잭슨 플록, 그다음에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 이들은 모두 티셔츠와 청바지, 가죽 재킷을 입고 다녔던 것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죠. 그래서 영화나 지금도 사진을 보면 굉장히 차가운 표정 그리고 진지한 눈매, 묘한 미소를 띤 표정, 그런 것들은 사실 이 사람들에게 어떤 매혹을 느끼는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것은 굉장히 연약하면서도 자유를 원하는 젊은 청년들의 상징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이들은 현실 세계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고 또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고 기성세대들을 믿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오히려 기성세대들이 요구하고 바라는 행복이라는 것은 그저 돈을 벌어서 유행 상품을 사는 소비 열풍과 자기만족에 편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기성세대들이 싫어하는 행동들을 하기 시작하죠. 성 해방을 외친다거나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한다거나 아니면 현란한 춤추기, 기성세대들이 싫어하는 음탕한 방식으로 춤추기 등을 통해서 부모 세대가 위험하고 부도덕하다고 말하는 것들을 추구하게 됩니다. 특히 이들은 당시에 미국 사회를 지배했던 흑인 분리 정책에 의한 인종차별에도 굉장히 반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힙스터족의 하위문화와 비트족의 하위문화가 이런 동일한 뿌리에서 성장하기는 했지만 그 두 스타일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흑인 문화에 굉장히 의존했고요. 또 그 문화와 관련해서 각각 다르게 위치 지어졌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힙스터족과 비트족의 구분
골드만은 힙스터족과 비트족을 구별하는데요. 힙스터족은 하층 계급의 댄디지만 그 게토 지역에서의 자신들의 비루한 문화들에서 스스로를 구별하기 위해서 되게 냉정하고 지적인 척을 합니다. 그들은 고급스러운 차를 마시고 재즈를 듣거나 아프로큐반 음악의 사운드처럼 일상에서 무언가 고급스러운 것들을 추구합니다. 반면에 비트족은 잭 캐루악처럼 원래부터 진지한 중상 계급, 남자 대학생들인데요. 캐루악이 도시 문화에 질식한 나머지, 먼 이국적 장소에서 살기를 원했던 것처럼 이 그룹들은 대부분 도시의 획일성을 거부하고 시골로 간다든가 또 교외로 여행을 한다든가 하는 그룹이 많습니다. 이렇게 순응주의, 획일화, 동질화, 물질주의, 이런 것들에 대해 미국 사회가 지배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풍요롭고 평온한 분위기에 은폐되어 있는 부정적인 속성들이 미국 사회의 순응을 강요하게 된다고 믿는 것이죠. 그래서 오히려 그런 미국 사회에서 순응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마치 진정제를 맞은 환자 같은 상태라고 생각하면서 이 시기의 미국 사회를 진정제 맞은 1950년대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런 비트닉이라든가 힙스터의 분위기는 영화 <킬 유어 달링>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요. 이 킬 유어 달링에도 보면 콜롬비아 대학의 신입생인 앨런 긴즈버그와 잭 캐루악과 윌리엄 버로우즈가 뉴 비전이라는 새로운 문학 운동을 진행하는 내용들이 잘 드러나 있거든요. 대학교 신입생 남자 대학생이 문학, 음악으로 진부한 미국 사회의 새로운 비전, 뉴 비전을 문학으로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는 의도로 하는 운동이 바로 뉴 비전 운동인 거죠. 이렇게 1950년대 로큰롤을 둘러싼 청년문화는 미국 음악, 특히 흑인들이 만들어 놓은 재즈와 블루스, 백인들의 컨트리 음악, 이런 것을 융합하면서 20세기 전 세계 대중음악을 주도해 갔습니다. 이런 흑인 노예들의 음악으로 100년 대중음악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 대중음악의 모습은 우리가 50년대부터 쭉 살펴볼 예정인데요. 흑백 인종 갈등의 비극을 오히려 청년들이 자신들의 문화로 견고한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것의 경계를 허물면서 오히려 흑백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흑백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던 것이 바로 로큰롤 뮤직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로큰롤 키드들은 흑인들과의 정체성을 공유하면서 백인 기성 질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하위문화를 자체적으로 형성했다는 흥미로운 특징을 가지고 있죠. 이러한 풍조는 60년대 영국 청년 문화로 이전해서 테디 보이라든가 모드족과 같은 아웃사이더들을 만들고 70년대는 미국의 히피 문화로 확대됩니다. 오늘은 1950년대 로큰롤을 둘러싼 청년문화에 대해서 살펴봤는데요. 이렇게 미국의 대중음악은 미국의 역사 그리고 청년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되어 있음을 로큰롤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